지적장애 교육의 역사 알아보기
지적장애 교육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지적장애 교육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지적장애아동의 교육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지적장애 교육의 역사
1800년 이전까지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교육적 대책은 찾아볼 수 없으며, 특별한 치료나 훈련을 제공하려는 노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1800년대 이후 지적장애인에게 교육적 접근을 시도한 개척자들과 근대적인 학교교육이 시작된 시기,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의 지적장애 교육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지적장애 교육의 시초
공식적으로 지적장애아동에게 교육을 시도한 최초의 사람은 Jean Marc Gaspard Itard(1774~1838) 라는 프랑스의 의사이며, 청각장애아동을 가르친 교육자입니다. 1799년 11~13세경의 어린이가 프랑스 남부의 아베롱 부근의 숲에서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이 야생소년은 전혀 말을 하지 못했으며, 눈은 안정되어 있지 않고 아무런 표정도 없었습니다. 지능은 매우 낮았을 뿐 아니라 기억력, 판단력, 사고력도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많은 내과 의사는 이 아동이 너무도 많은 결함을 가지고 있으므로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진단하였습니다. 그러나 Itard는 적절한 교육을 시키면 그도 문명인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습득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Itard는 이 학생의 이름을 Victor(빅토르)라고 부르고, 사회화와 교육을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고안하여 사용하였습니다.
5년간의 교육을 통하여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즉, 빅토르는 무감각하고 자제력이 결여된 야생소년에서 사물을 인식하고 이해할 줄 알며 사회성을 배우는 부분적인 문명인의 생활을 하게끔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말하기 훈련의 성과는 미미하였습니다. 훈련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무렵, 빅토르는 '우유l(lait)'와 '오 하나님(O Dieu)' 이라는 두 단어 정도밖에 표현하지 못하였습니다.
Itard는 Victor가 5년 동안 실시한 교육에서 표현 언어의 발전은 거의 나타나지 않아 실망을 하였고, Victor에 대한 교육이 총체적인 실패라고 간주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 학술원은 그에게 학술상을 수여하며 업적을 기렸습니다. 그의 업적은 빅토르를 교육하는 데 있어서 교육적 성패보다는 중증장애인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적 시도와 과정에서의 소득에 있다고 보았으며, 지적장애로 진단받은 아동이라도 체계적인 교육을 받으면, 능력이 어느 정도 향상될 수 있음을 보여 준 실제 사례가 되었습니다.
Itard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제자 Edouard Seguin(1812~1880)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Seguin의 교육프로그램은 생리학과 도덕성 교육에 중점을 두었는데, Itard의 방법보다는 훨씬 체계성을 지녔습니다. 그의 교육 방법은 근육 발달, 모방능력, 신경계 발달, 생리적 반사기능 발달 등을 도모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개별화 교수 방법과 행동수정 같은 오늘날에도 적용되고 있는 다양한 교육기법을 개발하였습니다.
Seguin은 지적장애인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교육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증명한 최초의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교육체계는 생리학적 방법이라고 부르며, 그의 구체적인 교육기법은 현재도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2. 근대적인 학교교육의 시작과 우리나라 지적장애 교육기관의 설립
지적장애 교육은 다른 장애 영역에 비해서 시작 시기가 다소 늦었습니다. 시작 연도 별로만 보면 프랑스가 1835년, 영국이 1847년, 덴마크가 1855년, 그리고 우리나라가 1966년 대구보명학교를 설립한 것이 최초입니다. 우리나라는 서양에 비해 약 한 세기가 뒤진 상태에서 지적장애 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한편, 일반 학교 특수학급의 경우에는 1971년에 대구 칠성초등학교에 전국 최초로 특수학급이 설치되었고, 1984년에는 경상북도 내에서 지적장애 중학교의 특수학급이 설치되어 10개 학급이 실험적으로 운영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85년에 전국에서 최초로 공식적인 특수학급이 경상북도 내 18개 학교에 설치되어 운영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된 우리나라의 지적장애 교육은 양적, 질적으로 고속 성장을 거듭해왔습니다. 한국특수교육총연합회의 조사통계에 의하면, 전체 특수학교 149개교 중에서 지적장애 학교가 96개교(국립 1, 공립 42, 사립 53)이고, 비율로는 64.4%로써 장애 영역 중 가장 많습니다. 아울러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아동 수는 23,718명이며, 그중에 16,941명으로서 비율로는 71.4%로 절대다수로 차지하고 있습니다.
3. 정신지체에서 지적장애로의 용어 변경
우리나라에서 정신지체라는 용어는 1990년대 초부터 사용되었습니다. 그 이전에는 정신박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는데, 이는 일본에서 사용하던 용어를 그대로 받아들여 우리나라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신박약이라는 용어는 용어 그 자체의 부정적인 의미가 매우 큰 것으로서 교육적 진보가 완전히 배제된 교육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신지체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지만 정신지체라는 용어가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의미, 즉 편견, 모욕, 멸시의 느낌을 주기 때문에 보다 덜 편견적인 용어로 바꿔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정신지체인애호협회의 고명균이 정신지체인의 권익 옹호 및 인식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정신지체 대신에 가장 적절하게 사용되었으면 하는 용어로는 지적장애가 31.7%, 발달장애 29.8%, 지적지체 15.4%, 발달 지체 14.8%, 기타8.2% 순으로 지적장애가 가장 많았고, 발달 지체가 가장 적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러한 학계와 관련 단체의 주장과 움직임 속에서 2007년 10우러 12일부터 '정신지체'에서 '지적장애'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이와 동시에 학회의 이름들도 변경되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지적장애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지적장애 교육의 역사는 Itard와 Seguin의 초기 교육 시도로 시작되어, 점차 체계화된 교육 방법으로 발전해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966년 대구보명학교 설립을 시작으로 지적장애 아동을 위한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용어 변화도 중요한 부분으로, 2007년부터 '정신지체'가 '지적장애'로 공식적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흐름을 통해 지적장애 아동 교육의 필요성과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