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교육의 역사에 대해 소개합니다.

시각장애 교육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시각장애 교육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시각장애아동의 교육을 잘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시각장애 교육의 역사

1. 우리나라 시각장애 교육의 발달

 1) 시각장애 교육의 성립

우리나라에서 시각장애인의 교육은 세종 27년인 1445년에 관학인 서운관(세조 12년에 관상감으로 개칭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프랑스에서 1784년 Valentin Haiiy에 의해 형식 교육으로서 처음 시작된 시각장애인 교육보다 339년이나 앞선 것입니다.

서운관에서는 영리한 맹인 10명을 선발하여 훈도 4에서 5명에게 3일에 한 번씩 서운관에 모여 점복교육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제도는 갑오경장(1894) 때까지 계속 되었습니다. 서운관에서는 스승이 제자에게 핵심이 되는 내용을 이해시키고 그것을 절구로 만들어 외우게 하며, 그 다음날 전날 배운 것을 스승 앞에서 하나도 틀리지 않고 외우게 한 다음 새로운 학습을 하게 하는 방법으로 교육을 해 왔습니다.

근대적 교육 형식을 갖추고 시각장애인 교육을 시작한 사람은 미국 감리교 선교사였던 Rosetta Sherwood Hall 여사였습니다. 그녀는 1890년 의료 선교사로 내한한 후 1892년 같은 의료 선교사인 William S. Hall과 결혼하여 평양에서 의료활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진료소 조수로 일하던 오석형의 딸인 맹소녀 오봉래에게 1894년에 처음으로 점자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1897년에 휴가를 얻어 뉴욕 맹학교에 가서 맹교육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여 평양으로 다시 돌아와 1900년에 평양여자맹학교를 개교하여 맹교육에 힘썼습니다.

Hall 여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점자(평양점자, 4점형 점자)를 만들어 아동들을 교육하였으며, 한국말 초보, 십계명, 성경을 출판하는 등 한글점자 보급에도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그 후 1903년에 평양여자맹학교는 정진소학교(1896년에 설립)에 특수학급을 설치하고 두 명의 맹여야를 입학시켜 부분적으로 통합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동양에서 최초의 통합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2) 구민 보호적 성격의 시각장애 교육

일제는 우리나라를 강점한 후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제생원 관제를 제정, 공포하고 구빈 보호적 성격을 띤 특수교육을 실시하였습니다. 제생원 관제에 따라 맹아부는 1913년 6월 1일 서울시 서부 이판동에서 맹생 16명, 농아생 11명 총 27명으로 교육을 시작하였습니다. 초대 맹아부장으로는 일본인 오츠카가, 한국인 교사로는 박두성 선생님 부임하였습니다. 맹아동의 교과목은 수신, 일본어, 조선어, 산술, 음악, 침안, 체조 등이었으며, 수업 연한은 맹생과 3년, 농아생과 5년, 맹생의 속성과는 1년이었습니다.

1914년에 조선총독부가 '안마술, 침술, 구술, 영업 취체 규칙'을 제정하여 졸업생에게 무시험으로 침, 구, 안마 면허를 주어 생업에 종사하게 하였습니다. 평양맹학교가 맹인 여자들에게 훌륭한 직업교육을 실시하지 못한 데 반하여, 제생원은 맹인들에게 직업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맹교육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일제 강점하의 어려움 속에서도 이창호 목사는 1935년 평양광명맹아학교를 설립하였는데, 이는 한국인에 의해 설립된 최초의 특수학교입니다. 이어서 1938년에 제생원 맹부 졸업생인 손용수에 의해 원산맹학교가 설립되었고, 같은 해 함흥맹학교와 경남맹학교가 각각 설립되었습니다. 이들 맹학교의 교육 내용은 제생원에 준하여 이루어졌습니다.

 3) 광복 이후의 시각장애 교육

민족의 광복과 더불어 민주교육이 추진됨에 따라 특수교육도 제도적인 정비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생원 맹아부는 미군정청 보건후생부로 이관되었고, 교명도 국립맹아학교로 바뀌었으며, 학제도 6년 과정의 초등교육을 실시하게 되었습니다. 1947년 9월 1일에는 중등과를 신설하였고, 1948년 2월 국립맹아학교는 보건사회부에서 문교부로 이관되었으며, 1950년 6월 1일 3년제 사범과를 신설하여 교육월 양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광복 이후 최초로 설립된 사립 특수학교는 1946년 4월에 이영식 목사가 대구에 설립한 대구맹아학원(광명학교와 영화학교의 전신)입니다. 이후 사립학교가 여러 지역에서 설립됨으로써 광복 이후 특수교육은 민간사학을 중심으로 활발히 보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52년에는 국립맹아학교를 서울맹아학교로 개칭하였고, 1953년에 충남맹인학원(현 대전망학교)이 개교하였으며, 1954년에 강원맹아원(현 강원명진학교)이, 1955년에 부산공립맹학교(1951년 국립맹아학교 분교로 개교)가 설립인가를 받았습니다. 1959년에 서울맹학교는 서울농학교와, 대구광명학교는 영화학교와 각각 분리되었으며, 1961년에 경기맹학교(현재 인천혜광학교)와 전남맹학교(현 광주 세광학교)가 설립되고, 충주성심맹인학교가 개교하였습니다. 1962년에는 전북맹아학교가 설립되고, 1964년에는 목표맹학교(현재 은광학교)가 개교하였으며, 1967년에는 청주맹학교가 개교하였습니다. 그리고 1971년에 현재까지의 시각장애 특수학교 중에서는 가장 늦게 임마누엘여맹학교(1976년에 한빛맹학교로 교명 변경)가 개교하였습니다.


2. 서양의 시각장애 교육 발달

 1) 맹교육의 발달

서양에서 최초의 맹학교는 프랑스의 Valentin Haiiy(1745~1822)가 세운 파리 맹학교입니다. 한 학생으로 개인적으로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1784년에 14명의 시각장애아동을 데리고 맹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Haiiy는 일반 학교의 교육 방법과 교육과정을 그대로 맹교육에 적용하였으며, 양각 선문자를 만들어 문자로 사용하였습니다. 파리 맹학교에서는 쓰기, 수학, 지리, 음악, 그리고 직업교육을 가르쳤는데, 직업교육에는 방적, 직조, 뜨개질, 바구니, 책 제본, 등의자, 인쇄술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Klein은 1804년에 빈 맹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맹아동을 공립 일반 학교에서 공부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 여러 제약으로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미국의 경우 1832~1875년 사이에 30여 개의 사립 및 공립 학교가 기숙제 학교로 세워졌습니다.

 2) 점자의 발명

현재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점자는 Louis Braille(1809~1852)에 의해 발명되었습니다.

Braille가 발명한 점자는 Charles Barbier가 발명한 야간문자에 기초를 둔 것인데, 위에서 아래로 6점, 좌우 2줄 모두 12점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 번에 지각하기에는 너무 길다는 것을 발견하고, 점 칸을 반으로 줄여 위에서 아래로 3점, 좌우 2줄 모두 6점으로 점 칸을 구성하였습니다. 후일의 연구에서 6점의 배열이 촉독에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 입증되었습니다. 

Braille는 1824년에 점자를 발명하였고, 1829년에 자신의 문자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으며, 1837년에 이를 다시 수정하였으나 아무도 그의 점자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점자는 맹인이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맹아동들은 필기를 하거나 책을 만들 때 점자를 계속 사용하였습니다. 결국 점자는 Braille가 죽은 2년 후인 1854년에 파리 맹학교에서 공식 맹인용 문자로 인정받게 되었고,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거의 모든 언어에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3) 통합교육의 발달

맹교육에서 처음으로 통합교육을 시도한 나라는 스코틀랜드입니다. 1872년 스코틀랜드의 교육법에서는 공립 일반 학교에 맹아동을 배치하는 조항을 마련하였는데, 이것이 맹아의 통합교육을 시도한 최초의 법률입니다. 미국에서는 1900년에 시카고에서 일반 학교 내에 맹아동을 입급시키기 위한 첫 학급이 개설되면서부터 1910년까지 8개 도시를 중심으로 통합교육 프로그램이 확대되었습니다. 1948년에는 통합교육을 받은 아동의 수가 미국의 모든 시각장애아동의 10%에 불과하였으나, 2003년에는 일반 학교에 재학 중인 시각장애아동이 84%로 확대되었습니다.

 4) 저시력 교육의 발달

저시력 교육에 가장 먼저 관심을 가진 나라는 영국입니다. 1902년 런던의 안과의사 Harman은 맹학교에 많은 저시력 아동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런던 시 교육의원회 의료감이었던 J. Kerr 박사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Kerr 박사는 1908년에 런던 캠버웰에 저시력 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맹학교와 구분하기 위하여 학교 이름을 근시학교라 불렀습니다. 청므에는 시력을 사용하면 눈을 더 나쁘게 한다는 철학 때문에 '읽기, 쓰기를 하는 아동은 출입금지'라는 표어가 게시되기도 하였으나, 후에는 칠판에 확대문자를 쓰게 되고 큰 종이에 고무 스탬프를 찍은 활자를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독일에서는 1911년에 저시력 학급을 두었으며, 프랑스는 1932년, 이탈리아는 1938년에 각각 저시력학급을 개설하였습니다. 미국에서는 1913년 퍼킨스 맹학교의 3대 교장이었던 Edward E. Allen이 보스턴에 저시력 학급을 설립하였고, 같은 해 Robert Irwin이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시에 저시력 학급을 개설하였습니다.

Barrage는 1964년에 '저시력 아동의 시각적 행동증가'를 발표하면서 눈을 사용함으로써 시기능이 향상된다는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Barrage는 잔존시력을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고, 이 때부터 교육과정에 시기능의 사용 훈련을 포함시켰습니다. 이때부터 학교교육에서 시기능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로 자리잡게 되었으며, 이것은 저시력 아동 교육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현재는 광학기구의 활용, 시각장애의 원인이 교육에 미치는 영향, 조명 수준, 시기능 평가 등 많은 기술과 지식이 발전하여 저시력 교육에 크게 기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무리하며

시각장애 교육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서양과 우리나라의 시각장애 교육 역사에 대한 이해를 통해 시각장애의 교육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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